우리나라의 미술사학계에서는 최경의 생존년대(生存年代)가 전혀 규명(糾明)되지 않았다. 그런데 <성종실록(成宗實錄)> 권 244, 성종21년(1490년) 9월(丙子) 20일조와 27, 28일조를 보면 화원으로 사과(司果)직에 있는 최경의 노승직(老陞職)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즉 이는 고희(古稀)의 노인들에게 내리는 가자(加資)를 의미하는 것인데, 당시 최경은 정3품인 절충(折衝)에 가자된다6). 따라서 이를 역산(逆算)하여 보면 최경은 1420년경에 태어났고, 그는 만 70세이던 1490년에도 화원으로서 현직에 근무하고 있었음을 보아 그는 1490년 이후에 사망하였다. 이는 그가 “나이 70에 이르도록 까지 눈이 밝아 능히 그림을 그렸다”는 이육(李陸: 1438-1498년)의 <청파극담(靑坡劇談)>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여 준다7). 이렇게 보면 조선초기의 삼대가(三大家)는 안견(1418년) 강희안(1419년) 최경(1420년) 순으로 연년생(連年生)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