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최씨 한림공파 독정종중의 중시조 이신 통정대부 형조참의 최함(호 한천)공께서 어은리 독지골에서 출생하시어 성년이 되신 후 이곳 독쟁이로 분가 하시면서 수성최씨 세거집성 마을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공께서 찬우물를 보시고 감탄하시어 호를 한천(寒泉)이라 지으셨기에 이 마을이 한천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 후 200년 후인 1740년(영조16년)경에 청송심씨 안효공파 후손이신 심 인字 수字께서 수성최씨 여인과 혼인하시어 이곳에 정착 하시고 박식한 한학으로 수많은 유생들을 배출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셨으며 이후로 수성최씨 청송심씨 양대 성씨가 주를 이루다가 1800년대 말에 전주이씨 몇 세대가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독정리의 유래는
“독쟁이”로부터 시작되며 다음은 한천마을입니다. 독쟁이와 한천(찬우물)을 합쳐서 지금의 독정리가 됩니다. “독”자는 항아리(독)에서 “정”은 찬우물(한천)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1600년경에 발간된 수성최씨 대동보에는 한자로 篤井里로 표기되어있습니다. 찬우물(寒泉)은 독쟁이의 명소이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넘쳐 흘러왔습니다. 샘이 너무 솟구쳐서 모래가 올라와 물을 먹을 수 없어 돌로 샘구멍을 약간 막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후 500년 이상된 느티나무가
큰 정자를 이루어 이를 기념하여 1774년(영조39년) 수원부 수류면 篤亭里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1895년(고종32년) 남양군 장안면에 편입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독쟁이(한천寒泉), 버섭말(신촌薪村), 이천서씨 집성촌, 거묵골(감묵甘墨), 단양우씨 집성촌을 합쳐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 단일부락을 이루게 됩니다. 1950년 이전에는 법정리에 1명의 구장(이장)을 두고 1명의 리서기를 두어 3개 부락의 행정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1953년경 이후부터는 독정리 1개의 법정리에 3개의 행정동을 분리하여 완전 독립 마을이 되었습니다. 1리 독쟁이, 2리 버섭말, 3리 거묵골 그 후 남양 간척지 분양으로 인하여 독정3리 거묵골 지역인 풀무골에 간척지 이주자를 위한 분양 주택을 지어 독정4리, 독정2리 버섭말에서 백봉산 고해를 독립하여 독정5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