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우리의 錦城山은 湖南의 絶景을 차지하고 있다. 一麓이 西로 뻗어 白龍山이 되고 一脈이 南으로 내려 大朴山이 되어 錦江가에 높이 솟아 있다. 非仙非俗인 선비가 그의 산을 士相하고 강물을 점하여 중간쯤 정자를 지었다. 바로 이것이 費隱亭이다.
그 상류 측엔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風詠浩歌하는 滄浪亭이 있고 그 하류측엔 逍遙, 藏春 세월따라 族遊하며 봄을 간직한 烟波의 息營亭이 있다. 모두 名家의 우족들이 遊賞한 勝地인데 그사이에낀 나의 정자를 비은정이라고 命名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그 것은 사시풍경이 不偏不倚하고 상하를 統合하여 用費軆隱으로 많은 景趣가 無窮하고 物色이 朝夕으로 아름다운 風景을 줌으로 遠近이 고르기 때문이다. 동으로 伽倻山이 있고 남으로 金剛山이 있고 西로 金鰲山이 있고, 北으로 白龍山이 있다. 四方이 山으로 周回하여 울타리가 있는 것 같다. 그의 앞에 錦江의 東으로 부터 시작하여 亭子앞에 이르러 瀦水가 三曲되어 있음은 老龍이 게으르게 잠자다가 마악 깨어나서 海門으로 向하는 형상과 같다. 和風이 불면 浪花千片이 번덕이므로 遊士가 騎馬를 멈추고 詩僧의 지팡이가 쉬고 商船이 끊임없다. 그의 뒤에는 無邊의 큰 들판에 가늘게 흐르는 물이 휘감아 돌고 있으므로 날마다 市場이 되어 交易을 하고 있다. 먼 山岳에 煙氣잠긴 寺刹엔 暮鐘의 소리가 隆隆(융륭)하고 草洞의 千家口엔 古木이 蔭蔭 하도다 봄엔 梅壇에 바람이 일면 살긋이 향기가 처음 움직이고 商船에서 竹을 태우면 가벼운 煙氣가 꽃을 가리우도다. 언덕에 芝草와 물가에 蘭草가 성하게 푸르고 細雨에 바람이 솔솔 불면 漁翁이 낚시를 드리우도다. 고기가 落花를 삼키면 香氣가 바다로 돌아가고, 鶴이 松扉에서 울면 소리가 들녘에 들리도다. 細草에 아지랑이가 끼고 長堤에 버들이 푸르며 밭갈이를 다한 牧童의 피리소리가 漁歌와 서로 어울리니 그 즐거움이 어떠하겠는가.
여름이면 梧桐 그늘이 뜰에 가득하고 石榴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煙氣는 실버들에 짙은데 새벽에 꽤꼬리가 아름다운 소리로 울고 있다. 뱃노래 한 곡조소리에 낮잠을 마악 깨고나니 百尺欄于(백척난간) 에 湖水가 淸風을 불어 보내도다. 객이 달빛 따라 이르니 그림자가 三州에 떨어 지도다. 冠童五,六名이 淸波에서 목욕하고 詩를 읊으며 亭子로 돌아오니 孔聖과 더불어 讚해야함을 어찌 나 홀로 點하고 있겠는가. 가을이면 寒暑를 분별하기 어려운데 새로이 기러기가 凄凉하게 울고, 갈대는 푸릇푸릇하고, 白露는 서리가 되고, 蘆花는 눈처럼 희고 산에 木葉은 비단처럼 붉고, 素月은 강물에 가득하고 亭欄은 물위에 뜬 것 같으니 張翰의 江東과 李白의 采石이 어찌 이보다 더 하겠는가.
겨울이면 白雪이 江山에 가득 쌓이니 上下一色으로 萬壑千林(만학천림)에 琪樹瓊技一이로다. 一葉孤舟에 簑笠한 瘐翁이 홀로 寒江에서 낚시질 하고, 어름이 흐르는 潮汐은 白龍이 遊戱한 듯 비늘 빛이 빛나도다. 그의 모두가 황홀함이 그림자 같아 興味가 도도하여 岳陽의 洞庭과 瀟湘의 八景이 어찌 이보다 부러웁겠는가. 그렇다면 만가지 景致가 森羅하여 變態無窮한 이 理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費이요, 하물며 老夫가 숨어사는 것을 오직 樂으로 삼고 怪한 行動을 하지 않음은 遯世이다. 들음이 없고 또한 後悔없이 江湖에 悔跡하여 聞達을 구하지 않으면 景物만을 收拾하고 있으니 胸襟이 快活하도다.
오히려 하늘에 뜬 솔개와 연못의 뛰는 고기며 梧桐에 달과 楊柳의 바람을 곳에 따라 스스로 즐기고 있음으로써 장차 늙은이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人生의 淸福이라 하겠다. 어찌 홀로 先天的인 누림이라 하겠는가. 실로 이는 君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그야말로 그렇게 될 바엔 보고 듣는 것에 다를 바 아니므로 이른바 隱이다.
嗚呼!
錦江上下의 곳곳에 有名한 정자는 단지 景物爲主로 지엇을 뿐이다. 그에 진실을 얻지 못할 진데 누가 이 亭子에 揭名한 뜻을 알랴. 스스로 마음에 얻은바 있어 書 하여 記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