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임진왜란 때 통제사 이순신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공을 세운 조선의 장수 최희량崔希亮(1560~1651)의 문집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그는 훌륭한 장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빼어난 시인(詩人)이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시로 여생을 마쳤으며, 그의 시는 맑고 담백하여 읽고 있으면 저절로 순진무구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부록으로 실려 있는 <최희량임란첩보서목崔希亮壬亂捷報書目>(보물 제660호)에는 그가 올린 승전의 내용이, 이순신이 직접 결재한 수결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희량(崔希亮)
1560(명종 15)~1651(효종 2). 자는 경명景明, 호는 일옹逸翁, 시호는 무숙武肅, 본관은 나주. 선조 19년, 무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선전관을 거쳐 흥양 현감에 제수되었다. 정유재란 중에 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휘하에서 여러 차례 승전을 올렸다. 당시의 승첩보(보물 제660호)가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주에 은둔하여 많은 시를 지었다. 병자호란 때는 나이가 많아 출전하지 못하고 대신 아들을 보내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게 하였다. 1605년에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훈록되었으며, 1774년에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유서로 ࡔ일옹문집ࡕ이 있다.
< 역자 소개>
이영호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학과 졸업. 동대학 문학박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
한국경학을 전공하였으며 동아시아 논어학을 연구하면서 유교경전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중기 경학사상 연구>가 있으며, 연구논문으로는 <퇴계 논어해석의 경학적 특징과 그 계승 양상>, <단종조 열사 이보흠의 삶과 그 기록의 의미> 외에 약 20여 편이 있다.
이라나
서울예술대학교 졸업.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전문과정(상임연구원) 수료.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국고문헌 전문번역위원.
동양고전 및 한국한문고전을 번역하고 있으며, 한문고전의 교육과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공역으로 조선 정조대 <일성록>이 있다.
목차
역자서문
서문
서문
일옹문집 권1
시
오언절구
1. 조정에서 물러나와(退朝時韻)
2. 위원에서, 순상의 시에 차운하여(渭原次巡相韻)
3. 가을 산 단풍놀이 가서(九秋遊山)
4. 국의가 진맥을 보니(國醫診脈感吟)
5. 무술년 승첩보를 올린 후 고향에 돌아와(戊戌奏捷後歸故園)
6. 난리를 겪은 후에(亂後吟)
7. 비은정(費隱亭)
8. 나의 뜻은(言志)
9. 한가로이(閒居)
10. 오랑캐 난리에 남한성 바라보며(胡變望南漢吟)
11. 늙음을 탄함(歎老)
12. 전장에 아들 결을 보내며(送子結扈從南漢吟)
13.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며(九男二女分財吟)
14. 시절을 느끼며(感吟)
15. 요동백을 애도하며(哀遼東伯)
16. 정자 위에서 순찰사를 마주하고 술을 따르며(亭上對巡相酌酒)
17. 가을날 강동을 생각하며(九秋思江東)
18. 한껏 취해(醉吟)
19. 「백 송호에게 주는 시」에 차운하여(次贈白松湖)
20. 우연히(偶吟)
21. 임 승지의 시에 차운하여(次林承旨韻)
22. 화강 주인을 방문하고(訪花江主人)
23. 세시에 김 승지가 생선과 쌀을 보내준 것이 고마워(歲時金承旨送魚米感吟)
24. 임 백호 제를 만나지 못해(林白湖名悌失會期有吟)
25. 달밤에 피리소리 들으며(月夜聞玉簫)
26. 맑은 가을날 김 처사를 찾아서(淸秋訪金處士)
27. 임 승지에게 드림(寄贈林承旨)
28. 식영정에 짓다(題息營亭)
29. 창랑정에 쓰다(題滄浪亭)
30. 저물녘 비 내리는 삼주에서 떠나가는 임 승지의 배를 바라보며(三洲暮雨望林承旨歸帆)
31. 임 승지께 드림(贈林承旨)
32. 농가의 생활고(田家契活)
33. 창랑정에서, 주인께 드림(滄浪亭贈主人)
34. 활쏘기를 배우는 뜻, 임 승지에게 드림(學射意贈林承旨)
35. 민 상사께 드림(贈閔上舍)
36. 일가 동생 정 한림에게(贈戚弟鄭翰林)
37. 능성 유 현감, 광주 이 목사, 순천 박 부사 세 분이 찾아오시니(謝柳綾城李光州朴順天三倅來訪)
38. 임 승지가 밤에 강을 건넌다는 말을 듣고(聞林承旨夜過前江)
39. 석양에 피리소리 들리는데(夕陽聞笛)
40. 오 한림이 찾아와서(吳翰林來訪)
41. 복받치는 마음(感吟)
42. 아흔 유감(九十有感)
43. 예조에서 생선과 술을 보낸 것에 감격하여(禮曹關送魚酒感吟)
44. 아흔에 부모님께 성묘 가서(九十省父母墓有感)
45. 느지막이 『중용』을 읽다(晩讀中庸)
46. 아흔 살 나의 뜻은(九十言志)
47. 백형 좌랑공의 「벼슬을 물러나」에 삼가 차운하여(謹次伯兄佐郞公休退韻)
48. 수족이 저려와서(手足不仁吟)
49. 아흔 둘 유감(九十二有感)
50. 귀향(歸鄕)
51. 옛일을 생각해 보면(思古)
52. 그림을 읊다(詠畵)
53. 우울(幽思)
54. 나운과 이별하며(贈別懶雲)
55. 삼주로 이사 와서(移居三洲)
56. 나랏일을 탄함(歎國事)
57. 비 갠 후 정자에서(高亭雨後)
58. 비 갠 후(江湖霽景)
59. 석양의 피리소리(夕陽聞笛)
60. 뱃노래에 잠을 깨어(聽欸乃)
61. 늦은 봄(暮春有感)
62. 강가 풍경(江興)
63. 매화 심기(種梅)
64. 석루에 올라 마을 불빛 바라보며(石樓望村火)
65. 삶(行藏)
66. 보내주신 생선 고맙습니다(謝送魚)
67. 피병한 곳에서 부모님의 기일을 만나다(避寓逢親忌)
68. 무등산에서 비를 만나다(無等山逢雨)
69. 식영정에서 국화를 보냈기에, 다시 전 시에 차운하여(息營亭送菊又次前韻)
70. 북두성 남쪽에서 고향을 그리며(在斗南思歸)
71. 을해년 큰 바람(乙亥大風)
72. 봄비 오고(春雨)
73. 노장의 슬픔(老將嘆)
74. 매화 국화 심은 뜻은(種梅菊)
75. 나운과 이별하며(別懶雲)
76. 가난(歎貧)
77. 나의 삶(素守)
78. 은자의 저녁 풍경(高亭晩興)
79. 새로운 곳의 즐거움(新居幽趣)
80. 봄날 새벽(春曉)
81. 벗을 기다리며(待友)
82. 작은 정자의 가을(小亭秋思)
83. 무등산 유람(遊無等山)
84. 강가에 살며(江居)
85. 오동나무 가지 치며(剪桐枝)
86. 옛 시를 써서 자손에게 주다(傳書古詩贈兒孫)
87. 경후 형에게(寄景厚兄)
88. 병풍의 꽃(屛花)
89. 복암사에 묵으며(宿伏巖寺)
90. 산사에 놀러 가서(遊山寺)
91. 마을 서쪽 양화당에 쓰다(題市西養花堂)
92. 도사의 시에 화답하여(和道士)
93. 가을에(秋思)
94. 비 갠 저물녘(雨後晩望)
95. 한겨울(歲寒)
96. 벼슬을 물러나(休退)
97. 남암의 승에게(寄南庵僧)
98. 우국의 정(憂國)
99. 저물 무렵 돌아오는 길(暮歸)
100. 속세를 떠나(幽居)
101. 달빛 아래 피리소리 듣는다(月下聞笛)
102. 노장(老將)
103. 탄식(自歎)
104. 민자우와 나누는 이야기(與閔子愚談話)
105. 벗과 나누는 한잔 술(與友對酌)
106. 한양 조 수재에게(贈漢陽趙秀才)
107. 유 수사에게(贈柳水使)
108. 난리 후 피리소리 들으니(亂後聞笛)
109. 전원에 사는 맛(田園雜興)
110. 소나무 집(松堂)
111. 소나무를 어루만지며(撫松)
112. 변방의 걱정(憂邊)
113. 태수께서 생선과 쌀을 보내주신 것에 감사하며(謝太守送魚米)
114. 은둔의 멋(逸興)
115. 늙음을 슬퍼함(憫老)
116. 창문을 여니(開窓)
117. 저물녘(晩望)
118. 새로 사는 곳(新居)
119. 노장의 노래(老將歌)
120. 혼자만의 즐거움(獨樂)
121. 가을 흥취(秋興)
122. 저물녘 배에서(暮帆)
123. 가을빛(秋色)
124. 특차로 순상이 되신 구 목사께(贈具牧使特差巡相)
125. 궁궐을 그리며(戀闕)
126. 강놀이(江遊)
127. 기다려도 벗은 오지 않고(待友不至)
128. 괴석(怪石)
129. 저물녘 고깃배에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漁舟暮烟)
130. 대나무 울타리(竹籬)
131. 술회(述懷)
132. 정경후에게(贈鄭景厚)
133. 식영정 지나며(過息營亭)
134. 분한 마음(憤吟)
135. 봄나물(新菜)
136. 금성산에 노닐다(遊金城山)
137. 산촌에서 비를 피하다(避雨山村)
138. 6월의 정자(六月高亭)
139. 늙은 어부에게(問釣翁)
140. 정축년 보름밤 달을 보며 남한성 생각하며(丁丑望夜見月思南漢)
141. 강에 내리는 비(江雨)
142. 반성(三省)
143. 세자께서 요수를 건너셨네(歎鶴駕渡遼)
144. 산사에서, 돌아가고픈 마음(山寺思歸)
145. 귀뚜라미 우는 소리(聞蟋蟀)
146. 저물녘(暮景)
147. 정경후가 정온 동계의 상소를 가져와 보여주기에(鄭景厚持示鄭蘊桐溪疏感吟)
148. 대설(大雪)
149. 김 시서의 게학대(題金市西憩鶴臺)
150. 대나무 울타리 새 집(新居竹籬)
151. 꽃을 보며(對花歎)
152. 취하여(醉歸)
153. 남한성 지나며(過南漢有感)
154. 강화를 청하다니(憤請和)
155. 깊은 근심(隱憂)
156. 집에서 치국평천하를 생각하다(居家思治平)
157. 나만의 즐거움(三洲幽興)
158. 어머니의 기일(慈忌有感)
159. 꿈에 본 아들(夢監察名結)
160. 낭사를 조롱하며(嘲浪士)
161. 늦봄(暮春)
162. 행원군이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온 것을 위로하며(慰幸原君解官歸)
163. 눈 내리는 날 금강산으로 떠나는 벗을 전송하며(雪中送友之金剛)
164. 강마을의 아침(水村朝景)
165. 이웃 노인과 나누는 술 한잔(隣翁共醉)
166. 비 갠 후 강가(江郊雨後)
167. 삼학사를 애도하며(哀三學士)
168. 뱃사공이 올린 괴석(舟人獻怪石)
169. 흉년(歉歲)
170. 가난한 집의 가을살이(窮家秋思)
171. 어촌의 밤(漁村夜思)
172. 소나무 시냇가(松溪風雨)
173. 애닯도다 남한성이여 강화도여(傷南漢江都)
174. 남한산성 포위 소식에(泣望南漢圍城)
175. 농사와 낚시 무엇이 어려운지(耕釣答)
176. 최백집을 보고(閱崔白集)
177. 겨울날(冬日)
178. 벗과 이별하며(別友)
오언율시
1. 비은정 백 상사의 시에 차운하여(費隱亭次白上舍-振南-韻)
2. 저녁 풍경(暮景)
3. 동년 이 여산 만가(同年李驪山挽)
4. 김기선 만가(金基善挽)
5. 조카 찬의 고송당(題從子纘孤松堂)
6. 여든 살, 나의 뜻은(八十言志)
7. 오 처사의 시에 차운하여(次吳處士)
8. 고 학사의 시에 차운하여(次高學士韻)
9. 비은정(費隱亭)
10. 비은정과 식영정 풍경을 비교해 보면(費隱息營相較風景)
11. 임 석천 억령, 양 송천 응정의 운에 차운하여 옥천 정 첨사의 정자에 쓰다(次林石川億齡梁松川應鼎韻題玉川鄭僉使亭)
12. 외솔(孤松)
13. 호서 김 학사의 시에 차운하여(次湖西金學士韻)
14. 나운이 술을 들고 찾아오다(懶雲携酒來訪)
칠언절구
1. 진주 목사로 있는 나운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장난삼아 준다(懶雲牧晉州未歸戱贈)
2. 순상과 부사와 함께 월출산에 달놀이하러 감(與巡相及亞使遊月出山)
3. 늙어 강호에서(老伏江湖)
4. 나운이 삼주를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聞懶雲過三洲)
5. 나운이 찾아옴(懶雲來訪)
6. 무등산 유람(遊無等山)
7. 정자의 가을 경치(高亭秋景)
8. 늦 풍경(晩景)
9. 금강의 돌아가는 배(錦江歸帆)
칠언율시
1. 양 학사의 시에 차운함(次梁學士)
2. 난리 통에 네 벗의 부고를 연이어 듣고(亂中連聞四友訃)
3. 정축년의 한탄(丁丑歎)
4. 식영정 상인의 시에 차운하여(息營亭次上人韻)
5. 나운에게(贈懶雲)
잡저雜著
1. 국화 심는 노래(種菊歌)
2. 생일에 자식들에게 줌(生辰贈兒)
3. 비은정기(費隱亭記)
4. 가묘에 관한 의논을 세우다(家廟立議)
5. 갑신 6월 선비 소상에 올리는 진정기(甲申六月先妣小祥陳情記)
6. 선고, 선비 두 분 거상 사적기(考妣兩喪居憂事跡記)
일옹문집 권2
부록
1. 일옹유사(逸翁遺事)
2. 행록(行錄)
3. 신도비명(神道碑銘)
4. 시장(諡狀)
5. 파왜보첩(破倭報捷)
6. 보첩 발문(報捷跋)
7. 청포소(請褒疏)
8. 선무원종일등공신록권(宣武原從一等功臣錄卷)
9. 증직전말(贈職顚末)
10. 유편후서(遺編後敍)
일옹문집 보유
1. 일옹집중간서(逸翁集重刊序)
2. 신조전선집물보첩(新造戰船什物報牒)
3. 일옹최무숙신도비명추기(逸翁崔武肅神道碑銘追記)
4. 시장 2(諡狀 二)
5. 묘표(墓表)
6. 흥양현감선정비(興陽縣監善政碑)
7. 보첩본장발문 9(報捷本狀跋文九)
8. 충일사유허비(忠逸祠遺墟碑)
9. 충일사비각사실(忠逸祠碑閣事實)
10. 발문(跋)
해제
최희량임란첩보서목(崔希亮壬亂捷報書目)_보물 제660호
출판사 서평
4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뛰어난 전술과 획기적인 전함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한 한 영웅을 기리는 날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웅에게는 또한 그와 함께 뜻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주었던 휘하의 장수가 있게 마련이다. 최근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휘하였던 한 장수의 문집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일옹逸翁 최희량崔希亮.
최희량(1560~1651)은 무과 장원 출신이다. 활을 잘 쏘아서 선조(宣祖)에게 어궁을 하사받고 흥양 현감(興陽縣監)에 특진되었다. 문인 집안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무재(武才)가 있었다. 정유재란 때에는 통제사 이순신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운 바 있다. 여러 곳에서 왜적을 격파하였고, 적의 포로로 잡혀 있던 7백여 명의 조선인을 귀환시키기도 하였으며, 전선戰船과 병기 등의 군수물자를 제작하여 일선에 보급하는 데도 누구보다 앞장섰다.
최희량은 당시 세운 전공으로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끝나자 돌연 낙향을 결심한다. 당시 논공행상으로 들끓고 있던 조정을 뒤로 하고, 전선에서 순국한 이순신의 죽음을 가슴에 안고서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한다. 그 후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ࡔ이충무공전서ࡕ에는 최희량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최희량은 나주 사람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흥양 현감에 제수되어, 수군을 거느리고 충무공의 진중으로 달려갔다.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다. 충무공이 조정에 그의 공을 포상할 것을 아뢴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배척을 받아 파직되었다. 이에 충무공이 자신의 진중에 머무르게 하여 군관으로 삼았다. 무술년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배 위에서 탄환을 맞고 돌아가시자 통곡하며 낙향하였다. 최희량은 '난리 통에 세상사 모두 변하여, 돌아와 이름 석 자 묻고 살고파' 하는 시를 짓고는, 드디어 문을 닫아걸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최희량은 무과 출신의 무관이었지만 시재(詩才) 또한 뛰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와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시를 지었다. 현재 문집에 남아 있는 시는 십분의 일도 채 안 된다고 한다. 그의 시는 맑고 담백하여 읽고 있으면 저절로 순진무구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먼 산 구름 처음 일 때
앞강 달님 가득 찰 때
그 속의 맑은 정취
남이 알까봐....
-<나만의 즐거움>
묻노니 그대
늙은 어부여
추운 강 외로운 배
어찌 홀로 낚싯대 드리우나
구복을 채우기 위해선가
아니
한 가닥 바람을 닮고 싶어서지
-<늙은 어부에게>
나주 대박산 아래에 비은정(費隱亭)을 짓고 임제(林悌), 임연(林堜), 백진남(白振南) 등 당시 문사들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기도 하였다.
화강 노인 보고파서
밤도록 사립문 닫지 않는데
밝은 달 가을 밤에
시만 남기고 돌아오지 않네
-<임 승지께 드림>
그런데 노인이 되었을 때는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왕년에 나라 위해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싸웠던 장수였지만, 힘없는 노인이 된 지금 어찌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잠겨 시를 짓는다.
왜구를 평정했던 팔십 먹은 노장은
꿈마다 사막으로 날아가네
오랑캐 무찌르려는 충정이 가슴 가득해
아직도 전쟁 때 입었던 갑옷을 걸친다
-<노장>
삼십에 동쪽 왜구 평정했는데
다 늙어 북쪽 호로 어이하리오
낡은 검 손에 들고 어루만지니
나라 위해 흘린 눈물 강이 되었네
-<늙음을 탄함>
어지러운 세상사를 피해 은둔하였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충심은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남은 인생을 농부나 어부와 어울려, 정작 자신이 농부가 되고 어부가 되어 조용하고 깨끗하게 삶을 마감했다.
가을 강엔 낚싯줄 드리우고
봄 들녘엔 쟁기를 손에 잡고
제멋대로 노래야 세상은 몰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참모습 지키리
-<삶>
호숫가에 작은 초가집을 지으니
사립문은 소나무, 울타리는 대나무
나지막해 산속 맑은 날 좋고
성글어 여름날 장마 때도 좋고
-<대나무 울타리 새집>
이 번역본에는 왜란 당시 최희량이 상부에 보고한 승첩보(勝捷報, 보물 제660호)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그 안에는 당시 최희량이 올린 승전의 내용과 노획한 왜군의 물품 및 전투를 위해 새로 마련한 물품 목록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함께 실려 있는 이순신 친필의 결재 내용과 수결도 볼 수 있다.
무장의 시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최희량의 시는 조선시대 무장의 풍모와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시적인 맛을 살려 번역하였다. 잊혀져 있던 한 무장의 문집을 통해 옛 무인의 물처럼 맑은 마음과 초목처럼 소탈했던 삶을 엿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농가의 생활고(田家契活)
밤에 새끼 꼬고
낮에 이엉 엮는 뜻은
장마가 지기 전
지붕을 손보고자
삶은
한 자루 외로운 낚싯대
일은
백송이 가득한 꽃 밭
宵索晝茅意, 綢繆陰雨前, 生涯一竿竹, 事業百花田.
비갠 후(江湖霽景)
동쪽 들녘
소 등에서 부는 피리소리
남쪽 나루터
낚시 드리운 늙은이의 도롱이
시를 지어 보나
다 할 수 없어
읊는 것 그만두고
다시 노래로
東郊牛背笛, 南浦釣翁簑, 入詩詩未盡, 吟罷更成歌.
노장(老將)
왜구를 평정했던 팔십 먹은 노장은
꿈마다 사막으로 날아가네
오랑캐 무찌르려는 충정이 가슴 가득해
아직도 전쟁 때 입었던 갑옷을 걸친다
平倭八十老, 沙漠[幕]夢魂飛, 擊胡忠憤極, 猶着戰時衣.
노장의 노래(老將歌)
젊은 나이에 왜적을 평정한 검으로
지금 오랑캐의 간담을 놀라게 한다면
외교의 담판처럼 승기를 잡을 터이니
병마를 수고롭게 행군시킬 것 있겠는가
年少平倭劍, 今令虜膽驚, 制勝猶樽俎, 何勞兵馬行.
정경후에게(贈鄭景厚)
봄이 지나는 어느 날
오시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그대
사립문을 여시네
그대 그리운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들 꺼내려다
그만
할 말을 잊었네
不省三春過, 君來開竹門, 相思多少意, 欲說却忘言